빨간약은 이미 삼켰다 — 매트릭스는 예언이 아니었고, 각성은 탈출이 아니다
2024년 가을, 『매트릭스』가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개봉 25주년을 맞아 극장이 필름을 다시 걸었다. 오래된 말다툼도 함께 돌아왔다. 한쪽은 그 영화가 미래를 봤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화면에 매여 살고, 알고리즘이 볼 것을 대신 골라주며, AI가 인간을 자원으로 부린다는 것이다. 다른 쪽은 코웃음 친다. 뇌만 통에 담겨 속고 있지도 않고, 인간을 배터리로 꽂아둔 기계 제국도 없다는 것이다. 두 진영은 사이가 나쁘지만 같은 자를 손에 쥐고 있다. 둘 다 영화가 그린 그 감옥이 실제로 지어졌는지를 세고 있다.
문자 그대로 채점하면 · 흔히 꼽는 예언은 셋이다. 인간을 배터리로 쓴다, 뇌에 실재를 통째로 써넣는다, AI가 인간에 맞서 봉기한다. 셋 다 빗나갔다.
그리고 회의파의 대답은 맞다. 우리는 그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 앱은 언제든 끌 수 있고, 창밖은 그대로 있고, 책은 펼치면 읽힌다. 뒤통수에 꽂힌 관도 없다. 이 확인은 사실이고, 사실이라서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런데 그 안심은 엉뚱한 것을 확인한 대가로 온다. 우리는 매트릭스가 던진 조건을 하나의 그림으로 기억했다. 통에 담긴 몸, 뇌에 꽂힌 관, 눈앞에 통째로 씌워진 가짜 세계. 감각의 감옥이다. 그림이 워낙 선명해서 25년 동안 양 진영이 나란히 그 그림만 채점했다. 한쪽은 지어지는 중이라 했고 다른 쪽은 아직 안 지어졌다고 했다. 안 지어진 게 맞다. 그러는 사이에 지어진 것은 다른 층이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매트릭스가 몇 개를 맞혔느냐가 아니다. 왜 25년 동안 우리 모두가 틀린 것을 세고 있었느냐다. 하나의 그림이 너무 잘 그려지면 그 그림이 조건을 대신한다. 그사이 조건은 그림이 담지 않은 쪽에서 자란다.
매트릭스가 번역한 물음
'우리가 사는 현실이 실은 정교하게 계산된 가상일지 모른다'는 시뮬레이션 가설은 매트릭스의 발명이 아니다. 그 물음은 훨씬 오래됐다. 플라톤은 2400년 전에 동굴을 그렸다. 사람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로 알고 평생을 산다는 이야기다. 데카르트는 전능한 악령이 감각을 통째로 속인다면 무엇을 확실히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20세기에 퍼트넘은 같은 물음을 '통 속의 뇌'로 갱신했다. 확률로 따진 보스트롬의 논증은 아예 영화보다 네 해 늦게 나왔다.
계보의 연도와 텍스트 · 플라톤 『국가』 7권(기원전 4세기). 데카르트 『성찰』(1641) 제1성찰의 악령과 제2성찰의 코기토. 퍼트넘 『이성·진리·역사』(1981) 1장. 보스트롬의 논문은 2003년에 나왔고, 그가 편 것은 '우리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는 단정이 아니다. 인류가 조상 시뮬레이션을 만들 만큼 발전하기 전에 사라지든, 발전하고도 거의 만들지 않든, 우리가 이미 그 안에 있든, 셋 중 하나는 참이라는 논증이다.
계보의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저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이나 딛고 설 확실성을 남겼다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동굴 밖으로 나가는 일은 가능하고 바람직했다. 그림자를 벗어나 태양을 보는 것이 곧 교육이자 해방이었다. 데카르트의 회의는 방법이었을 뿐이고, 그는 의심하는 '나'라는 바닥을 딛고 확실성으로 되돌아왔다. 퍼트넘은 아예 회의주의를 언어의 논리로 되받았다.
퍼트넘의 언어 논증 · 평생 통 속의 뇌였던 존재는 '통'이니 '뇌'니 하는 말로 바깥의 진짜 통과 뇌를 가리킬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의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 해소는 언어 층위의 것이라, 방금 통에 담긴 경우까지 덮지는 못한다.
그 출구를 매트릭스는 지웠다. 그리고 물음을 비틀었다. '우리가 속고 있음을 알 수 있는가'에서, '속이는 세계가 쾌적하고 거기서 우리가 이득을 볼 때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로. 이 이동을 위해 영화는 세 겹을 포갰다. 맨 아래 인식론의 겹은 이게 진짜냐를 묻는 빨간약과 파란약이다. 그 위 정치경제의 겹은 인간을 배터리로 꽂아 쓰는 발전소로, 이 환상으로 누가 이득을 보느냐를 묻는다 — 답은 인간이 자원이라는 것이다. 맨 위 실존의 겹은 깨어나고도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다. 각성해도 낙원은 없는데 그래도 깰 것이냐를 묻는다. 오래된 회의주의 물음에 이 둘이 포개지자, 인식론이 갑자기 정치와 실존의 문제로 바뀐다.
이 세 겹조차 온전한 발명은 아니다. 겹마다 앞선 이가 있었다. '세계가 실은 가짜'라는 발상은 영화 개봉 무렵 스크린에 흔했다. 안락이 곧 사슬이 되는 구도는 『멋진 신세계』가 앞서 갔다. 쾌적한 환상을 알면서도 택하겠느냐는 물음은 '경험 기계'라는 사고실험에 이미 있었다.
앞선 이들 · 『다크 시티』(1998)와 『13층』(1999)이 같은 전제를 깔았고, 그 뿌리엔 필립 K. 딕이 있다. 헉슬리 『멋진 신세계』(1932)의 통제 수단은 채찍 대신 길들이기와 쾌락이어서, 사람들이 제 매인 상태를 사랑하도록 만든다. 노직이 1974년에 낸 경험 기계는 원하는 경험을 무엇이든 완벽히 재현하는 기계에 평생 접속하겠느냐 물었다. 대다수는 '아니오, 나는 실제로 살고 싶다'고 답하리라 본 사고실험이다.
그러니 매트릭스가 한 일은 이 겹을 발명한 것이 아니다. 흩어져 있던 조각을 단 하나의 대중 이미지로 압축하고 번역한 것이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실재의 사막에 온 걸 환영한다'는 대사부터가 보드리야르에게서 따왔다. 감독 워쇼스키는 배우들에게 그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필독시켰다. 원본 없이 복제가 복제를 낳는 상태를 다룬 책이다. 빌려온 물음을 하나의 알약과 하나의 도시 풍경으로 옮긴 것, 그것이 매트릭스의 몫이다.
우리는 얼마나 매트릭스 안에 있나
여기서 가장 큰 유혹은 과장이다.
"우리는 이미 매트릭스 안에 산다"는 말은 근사하게 들리지만 문자 그대로면 지나치다. 우리가 정말 그 안에 있는지는 안에서 반증할 수 없는 물음이다. 신의 존재가 그렇듯, '틀렸다'고 못박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글은 그 물음을 다루지 않는다. 다루는 것은 안에서 따져볼 수 있는 쪽, 곧 매개의 지분과 위임의 층위다. 그쪽에서 보면 지금 벌어지는 일은 적어도 감각의 감옥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 앱을 끄고, 창밖을 보고, 책을 펼쳐 날것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바깥이 사라진 것도, 몸이 물리적으로 갇힌 것도 아니다. 추천 알고리즘이 편의를 주는 것과 인간을 통 속에 가두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수사로 부풀리는 순간 부분적 편의가 실존적 감옥으로 둔갑하고, 그러면 논의는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
잘라내고 남는 층은 둘이다. 하나는 인식론적 매개다. 우리가 '세계'라 여기는 것으로 가는 경로가 이미 상당 부분 시스템을 통과한다. 무엇을 볼지의 큰 몫이 추천을 거친다. 넷플릭스는 시청의 약 80%가, 유튜브는 총 시청시간의 약 70%가 추천에서 나온다고 회사가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관계다. 무료로 쾌적하게 주어지는 서비스 안에서, 정작 팔리는 상품은 우리의 주의다. 매체가 광고주에게 파는 진짜 상품이 수용자의 주의라는 발상은 이미 반세기 전에 정리됐다. 서비스 개선에 필요한 몫을 넘어 예측과 표적화에 쓰이는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행동잉여'라 부른다. 매트릭스가 그린 '고객인 줄 아는 자원'이란 바로 이 배치를 가리킨다.
수용자 상품·행동잉여·추천 점유율 · '수용자 주의가 곧 상품'이라는 발상은 댈러스 스마이스가 1977년에 정리했다. 예측과 표적화에 쓰이는 행동 데이터를 가리키는 '행동잉여'는 쇼샤나 주보프의 명명이다. 넷플릭스의 80%는 2015년, 유튜브의 70%는 2018년에 회사 쪽이 밝힌 수치이고 그 뒤로 일괄 갱신된 적은 없다.
이게 전부다. 이 이상 나가면 근거가 받쳐주는 범위를 넘는다. 시스템이 '무엇을 볼지'에 큰 지분을 갖는다는 것과, 시스템이 '실재를 저술한다'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지금 참인 것은 앞엣것뿐이다. 매개의 지분이 크고, 매개를 거치지 않는 경로, 곧 직접 찾고 직접 읽는 길에는 품이 더 든다. 딱 거기까지다. 이 매개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무엇을 원할지, 나는 누구에게 넘겼나과 어젯밤 그 한 시간은 누가 골랐나가 이미 다뤘다. 여기서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지금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부르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매트릭스의 대중적 이미지는 '조종당하는 수동적 노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중독된 희생자가 아니라 '무엇을 볼지'의 판단을 시스템에 위임한 이용자다.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매개의 초점이 지금 옮겨가고 있다. '무엇을 볼지'에서 '무엇을 실재로 알지'로. 이것이 우리가 데이터에서 읽는 방향이고, 확신은 낮게 잡아 둔다.
차이는 검색창 앞에서 가장 쉽게 만져진다. 몇 해 전만 해도 검색은 결과 목록을 내주었고, 무엇을 믿을지는 그중에서 사람이 골랐다. 지금은 답 하나가 이미 쓰여서 맨 위에 온다. 고르는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이 세계에 닿는 길목엔 늘 매체가 있었다. 방송에서 포털로, 다시 OTT와 알고리즘 피드로. 지난 10년의 매개가 추천, 곧 이미 있는 것들 중 무엇을 앞에 놓을지였다면, 지금 커지는 매개는 생성과 요약이다. 무엇이 참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시스템이 곧바로 합성해 건넨다. 구글은 2025년 7월 실적 발표에서 자사 AI 요약이 월 20억 명 넘는 사용자에게 노출된다고 밝혔다. 그 기능을 쓰겠다고 고른 사람 수는 아니다. 검색을 하다 요약을 보게 되는 사람 수이고, 구글 검색을 쓰는 사람의 상당수가 지나는 길목이다. 뉴스를 AI 챗봇으로 접한다는 사람의 비율은 주간 기준으로 7%에서 10%로 올랐다. 피드 쪽도 마찬가지다. 흘러드는 콘텐츠의 적지 않은 몫이 이미 기계 생성이다.
추천과 생성은 같은 일이 아니다. 추천은 이미 있는 것들의 순서를 바꿀 뿐, 그것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남겨둔다. 생성은 다르다. 요약 뒤에 원래의 사건이, 이미지 뒤에 실물이 없을 수 있다. 이미지 생성기가 그린 얼굴 뒤에는 애초에 찍힌 사람이 없다. 지시할 대상 자체가 지워지는 것이다. 여기서 흐름이 한 번 끊긴다. 알고리즘이 노출을 고르던 데서 AI가 정보를 직접 짓는 데로 넘어가는 국면이다. 이 국면에 이르러서야 '실재의 저자가 시스템으로 넘어간다'는 말이 성립하기 시작한다. 지금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쪽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다. 매개가 '무엇을 볼지'에 머무는 한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본 것으로 세계를 짓는다. 그러나 매개가 '무엇이 진짜냐'의 판정까지 대신 하기 시작하면, 세계를 짓는 재료 자체가 시스템을 거쳐 온다. 매트릭스가 앞을 내다본 지점은 여기다 — 감각의 감옥이 아니라 인식의 외주.
지금 깊어지는 건 감각의 감옥 쪽이 아니다. 그쪽은 오히려 멀다. 뉴럴링크가 2024년 초 첫 이식을 했지만, 그 일은 뇌에서 신호를 내보내 커서를 움직이는 것이지 감각을 뇌에 써넣는 게 아니다. 최고 사양 몰입 기기도 고해상 시각과 공간 음향까지가 한계다. 깊어지는 쪽은 몸을 가두는 층위가 아니다. 무엇을 실재로 여길지를 가르는 층위다.
이 이동에는 성질이 하나 더 있다. 판정을 넘길수록 그 넘김을 되짚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슬은 이렇게 이어진다. 무엇이 진짜인지의 판정을 시스템에 위임한다. AI가 짓는 솜씨는 는다. 솜씨가 늘수록 맡길 이유가 더 정당해진다. 그런데 맡긴 판정을 대볼 바깥의 잣대도 같은 시스템을 거쳐 온다. 요약이 맞는지 확인하려 검색하면 그 검색이 또 요약을 내주고, 이미지가 진짜인지 알아보려 하면 그 판별 역시 같은 회로에서 나온다. 그래서 위임을 되짚을 통로부터 좁아진다. 되짚을 근거가 사라지면 처음의 위임도 다시 물을 수 없다. 맡길 이유를 정당하게 만드는 그 능력 향상이, 그 위임을 검사할 통로를 같은 손으로 닫는다. 대볼 창구가 하나로 좁아지는 만큼 닫힌다.
본문이 세운 관계만 옮긴 그림 · 방향 판단(확신 낮음)이지 측정된 크기가 아님
이 구조에는 경제 쪽에 먼저 나온 판본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묶어 판 채권에는 신용등급이 붙었고, 그 등급이 세탁되자 가격은 제 지시 대상에서 떨어져 나갔다. 값이 가리켜야 할 것은 빌린 사람의 상환 능력이었는데, 시장이 실제로 본 것은 등급이었다. 바깥의 잣대가 없었던 게 아니다. 대출 원장을 직접 뜯어본 소수는 등급이 아닌 것을 봤고, 그래서 회로가 멈추기 전에 알았다. 다만 그 길은 비쌌고, 등급을 그냥 믿는 쪽이 언제나 더 쌌다. 지시 대상이 지워진 자리에서 그것을 검사할 잣대까지 기본값으로 같은 손에 있으면, 틀렸다는 사실은 회로가 멈춘 뒤에야 드러난다. 신용에는 마진콜이 있어 회로가 언젠가 강제로 멈춘다. 판정의 위임에는 그런 게 없어서, 틀렸다는 사실이 인쇄될 자리조차 없다. 오늘의 주의 시장을 서브프라임에 빗댄 것은 팀 황이고, 그가 겨눈 과녁은 표적 광고 효능의 거품 쪽이었다. 여기서 빌려 오는 것은 그의 결론이 아니다. 그 구조다.
물론 이 방향은 조심스럽게만 가리킬 수 있다. 뉴스 AI 챗봇의 상승만 해도 성숙 시장에서는 이미 정체다. 이 신호들은 반증자로 쓸 수 없다. 관측이 쌓이면 방향이 더 또렷해지거나 흐려지는 방증에 가깝다.
48개국 합산의 함정 · 그 상승은 48개 시장을 합산했을 때의 그림이고, 미국·영국 같은 성숙 시장에서는 전년 대비 사실상 정체다. 표본을 합산한 데서 온 착시일 수도, 이미 포화에 이르렀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정체하면 무엇이 남는가. '무엇을 볼지'의 위임이 남는다. 추천이 그 몫의 큰 부분을 가져간 것은 이미 측정된 사실이고, AI 없이도 성립한다. 7%에서 10%로라는 수치도 뒤집어 읽으면 두 해 모두 열에 아홉은 그 주에 뉴스를 챗봇으로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AI 신호를 전부 빼도 위임 자체는 남는다. 다만 그 위임이 판정의 층까지 가는지는 AI 국면의 물음이다. AI는 위임을 새로 만들지 않는다. 한 층 더 밀어 올릴 뿐이다.
거스르는 힘도 있다. 생성물에 출처를 표시하는 워터마킹과 콘텐츠 자격증명, 곧 이 파일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따라 붙이는 표식이 퍼지고 있다. 다만 이 표식은 무엇이 기계로 만들어졌는지를 알릴 뿐, 판정 자체를 회로 바깥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 표식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2024년 5월 구글의 AI 요약이 '피자에 접착제를 넣으라'는 식으로 눈에 띄게 실패하자 회사가 요약 범위를 되레 줄이기도 했다. 실재의 저자가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흐름에는 그것을 되밀치는 맞은편 힘도 함께 있다. 이 전망을 매끄러운 외길로 그릴 수 없는 이유다.
매트릭스가 한 일은 예언이 아니라 진단이다. 진단의 주어는 영화이고, 전망의 주어는 우리다.
자기모순처럼 보이는 대목 · 앞에서는 SF를 예언으로 채점하지 말라 해놓고 여기서는 매트릭스를 '앞을 내다본 진단'으로 읽으며 미래까지 전망한다. 주어가 다르다. 영화는 개봉 무렵 이미 싹트던 조건을 철학적으로 읽어냈다. 구글은 1998년에 세워졌고, 검색 광고는 2000년에 팔리기 시작했으며, 닷컴 거품은 그해 봄에 정점을 찍었다. 그 조건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판단은 우리 몫이다. 앞을 내다본 주체는 애초에 영화가 아니다. 조건의 궤적이다. 좋은 SF의 힘은 몇 개를 맞히는 데 있지 않다. 오웰의 『1984』도 1949년의 진단이었지 1984년에 관한 문자 예언이 아니었다.
각성한 다음
앞서 모피어스의 대사로 나온 '실재의 사막', 그 원저자인 보드리야르는 매트릭스가 자기를 오독했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했다. 영화가 빨간약과 파란약을, 진짜와 가짜를 너무 말끔히 갈라놓아 '돌아갈 실재'가 바깥에 따로 있다고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원본 없이 복제가 복제를 낳는 상태에는 돌아갈 원본도 바깥도 애초에 없다.
값을 치르고 넘어간다. 그가 맞다면 이 글의 결말도 함께 무너진다. 돌아갈 원본이 없다면 판정을 대볼 바깥이라는 것도 함께 없어지고, 이 글이 끝에 두려는 절차도 딛고 설 바닥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주장을 줄인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원본으로의 복귀가 아니다. 무엇을 실재로 칠지 정하는 절차를 우리 쪽에 남겨두는 일이다. 바깥에 참된 세계가 따로 놓여 있어야 그 절차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절차마저 판정 대상과 같은 회로에서 나오면 절차라 부를 것이 없어진다. 그 회귀를 한 번 더 돌리면 절차를 쥔 우리도 같은 회로 안이다. 이 글은 거기서 멈춘다. 그것까지 받고 나면 어떤 판정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이것은 논박이 아니라 작업 가정이다.
빨간약은 흔히 해방의 상징으로 읽힌다. 삼키면 각성하고, 각성하면 매트릭스에서 걸어 나온다. '빨간약을 삼켰다'가 한때 인터넷 밈으로 돌 만큼 익숙한 도식이다. 그러나 영화 자신이 이 도식을 무너뜨린다. 사이퍼는 매트릭스에서 이미 빠져나온 동료인데도 그 진실을 견디지 못해 환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스테이크가 가짜인 줄 알면서도 그 가짜가 낫다고 말한다. 빨간약이 네오에게 건넨 것도 자유는 아니었다. '사막 같은 실재'였다. 플라톤의 동굴에서마저 그랬다. 사슬을 끊고 태양을 본 자는 거기 머물지 않고 동굴로 되돌아온다. 각성은 도착점이 아니라 왕복의 시작이었다.
"나는 피드를 껐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적지 않고, 그 규모는 소수의 별난 습관을 훨씬 넘는다. 48개 시장 평균 42%가 뉴스를 가끔 또는 자주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답했다. 이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넘어가면 논지가 무방비가 된다.
그들이 무엇을 되찾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갈린다. 피한다고 답한 사람들에게 그 방식을 물었다. 뉴스가 나오면 스크롤해 넘기거나 채널을 돌린다는 답이 절반을 넘었다. 알림을 꺼 확인 빈도를 줄인다는 답이 그와 비슷했고, 특정 주제를 피한다는 답이 3분의 1쯤이었다. 셋 다 노출을 줄이는 행위다. 무엇이 참인지를 따져 걸러내는 행위가 아니다. 감각과 주목의 층은 되찾고, 판정의 층은 그대로 맡긴다.
사람들은 피드를 손보기도 한다. 언팔로우와 뮤트, 차단, 설정 변경으로 무엇이 뜰지에 영향을 주려 시도한 비율이 35세 미만에서 약 65%, 그 위에서 약 55%다. 그리고 그 동기로 든 것은 '더 믿을 만하게, 덜 유해하게, 관점을 다양하게'였다. 그러니 판정의 층은 그대로 맡긴다고 한 앞 문단의 말은 너무 셌다. 사람들은 그 층에도 손을 댄다.
다만 손을 대는 자리가 전부 시스템 안이다. 언팔로우도 뮤트도 차단도 설정도 시스템이 내준 조절기다. 무엇을 믿을지의 기준을 바깥에 세우는 게 아니라, 그 조절기로 무엇이 뜰지를 재배치한다. 조사가 물은 것도 딱 거기까지다. 다른 매체와 대보거나 원문까지 찾아가는 길은 여기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없는 것은 잣대 자체가 아니다. 손 닿는 자리에 기본값으로 놓인 잣대다.
회피 수치의 시점 · 48개 시장 평균 42%는 2026년 조사값이다. 2025년 조사는 같은 지표를 40%로, 2017년 조사는 29%로 보고했다. 그런데 2026년 보고서는 이를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라 서술하는데 자기 2025년 값과 2%포인트 어긋나므로, 여기서는 추세를 빼고 수준만 쓴다. 회피 방식의 분해와 피드 손보기 비율은 2023년 조사값이다.
우리 쪽 사정도 다르지 않다. 여기서 '각성'이라는 말의 뜻을 하나로 고정한다. 정보로서의 앎이다. '알고리즘이 네 시선을 고른다', '무료 서비스에서 상품은 너다' 같은 문장을 읽어서 아는 것. 우리가 삼킨 빨간약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앎은 위임을 해제하지 못한다. 방증은 있다. 사람들은 긴 영상을 더 좋아한다고 답하면서 실제로는 짧은 영상을 본다. 그리고 그 앱들에 머무는 시간은 해마다 최고치를 갈아치운다.
이 숫자들의 한계 · 인구 전체의 집계이지 각성한 사람만 따로 잰 값이 아니다. 방향을 비추는 정황이지 개인의 명제를 증명하는 근거는 아니다. 이 괴리를 중독이나 의지박약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데이터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는 어젯밤 그 한 시간은 누가 골랐나가 짚었다.
우리가 '못 나간다'는 게 아니다. 애초에 우리를 가둔 문 같은 건 없다. 세계에 닿는 매개를 시스템에 위임해 두었을 뿐이고, 그 위임은 언제든 도로 거둬들일 수 있다. 다만 그 앞에 서는 방식이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자유는 실재하지만 무조건의 자유가 아니라 조건 안에서의 자유다. 우리는 각성하고도 그 위임을 도로 거둬들이기를 택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맡긴 채로 둔다. 각성은 위임을 자동으로 해제하지 않는다.
그러니 빨간약이 체념의 알약인 것도 아니다. 빨간약이 정말 건네는 것은 매트릭스 밖 어딘가가 아니다. '무엇을 실재로 여길지'가 물음일 수 있다는 자각이다. 그 판정을 시스템에 위임했다는 것, 그리고 도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 되찾음에는 품이 들고, 되찾은 사람이 많다는 신호는 아직 없다. 각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가 잘못 센 것
25년 동안 우리가 센 것은 감각의 감옥이었다. 그건 안 지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지어지고 있는 것은 판정의 층이다. 무엇을 볼지의 위임은 이미 측정됐고, 무엇이 진짜인지 정하는 자리로도 옮겨가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성하고도 그 위임을 도로 거둬들이기를 택하지 않는다. 이 위임이 스스로를 가리기 때문이다. 되짚을 잣대까지 기본값으로는 같은 회로에서 나온다. 그러니 지렛대는 개인의 결심에 있지 않다. 더 굳게 마음먹으라는 말로 될 일이었다면, 피드를 더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보려 손을 댄 그 65%와 55%가 이미 되찾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없던 것은 의지가 아니다. 손 닿는 자리에 놓인, 판정 대상과 다른 손의 잣대다. 대출 원장을 직접 뜯어본 소수가 있었듯 그 길이 닫힌 적은 없다. 다만 늘 더 비쌌다. 그러니 손볼 자리는 도구를 끊는 데가 아니라 그 값을 낮추는 데 있다. 표식이든 검증자든 창구든, 기준은 하나다. 그것을 쥔 손이 판정 대상과 이해가 어긋나느냐다. 빨간약은 이미 삼켰다. 남은 일은 무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실재'라 부를 것을 정하는 절차를 판정 대상과 다른 손에 두는 것이다.
출처
- 플라톤, 『국가』 7권 '동굴의 비유' (기원전 4세기). https://en.wikipedia.org/wiki/Allegory_of_the_cave
- 르네 데카르트, 『성찰』 제1·2성찰 — 악령과 코기토 (1641). https://en.wikipedia.org/wiki/Cogito,_ergo_sum
- 힐러리 퍼트넘, 『이성·진리·역사』 1장 '통 속의 뇌' (1981)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해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kepticism-content-externalism/ · https://iep.utm.edu/brain-in-a-vat-argument/
- 닉 보스트롬, "Are You Living in a Computer Simulation?", Philosophical Quarterly 53(211) (2003). https://simulation-argument.com/
-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Anarchy, State, and Utopia)』 3장 '경험 기계' (1974). https://en.wikipedia.org/wiki/Experience_machine
-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1981) + "The Matrix Decoded", Le Nouvel Observateur 인터뷰 (2003-06). https://en.wikipedia.org/wiki/Simulacra_and_Simulation · https://baudrillardstudies.ubishops.ca/the-matrix-decoded-le-nouvel-observateur-interview-with-jean-baudrillard/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1932; 서문 1946). https://en.wikipedia.org/wiki/Brave_New_World
- 조지 오웰, 『1984』 (1949). https://en.wikipedia.org/wiki/Nineteen_Eighty-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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