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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에 보너스가 걸리는 순간 — 지표는 비추기를 그만두고 엔진이 된다

2026.07.12·읽기 31분

운전대를 잡은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보너스가 계기판의 속도 숫자에 걸려 있으면, 사람은 실제로 빨리 가려 애쓰기보다 숫자를 높이려 운전합니다. 내리막을 골라 타고, 급하지 않은 길에서 액셀을 밟습니다. 이때 계기판은 속도를 비추지 않습니다. 속도를 만들어냅니다. 재는 대상이 자기 점수를 읽을 줄 알고 그 점수에 무언가가 걸려 있을 때, 측정은 카메라 노릇을 접고 엔진으로 넘어갑니다.

온도계는 온도를 바꾸지 않고, 자로 잰다고 책상이 늘어나지도 않습니다. 재는 일이 대상을 건드리지 않는 경우는 분명히 있습니다.

카메라와 엔진을 맞세운 사람은 사회학자 도널드 매켄지입니다. 70여 년 전 한 경제학자가 좋은 이론이란 현실을 복제한 사진이 아니라 탐구를 밀고 나가는 '분석의 엔진'이라고 한 말을, 매켄지는 금융으로 돌려 책 제목에 얹었습니다. 《엔진이지, 카메라가 아니다》. 금융 모형은 시장을 얌전히 찍는 카메라가 아니라, 돌아가면서 시장 자체를 밀어 바꾸는 엔진이라는 겁니다.

이 글이 뜯어보려는 것이 그 엔진입니다. 다 뜯고 나면 지표 앞에서 던져야 할 첫 물음이 바뀝니다. "이 숫자가 정확한가"는 첫 물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아니라 장치 — 재귀성과 수행성

"측정이 대상을 바꾼다"는 말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관찰하면 행동이 달라진다는 관측자 효과, 소문이 진짜를 만든다는 자기실현적 예언은 다들 아는 얘기입니다. '저 은행 곧 망한다'는 소문이 예금 인출을 부르고, 그 인출이 진짜 부실을 만드는 뱅크런이 그렇습니다. 믿음이 되먹임으로 현실을 미는 이 현상을 재귀성(reflexivity)이라 부릅니다. 상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측정이 행동을 바꾸는 것은 맞지만 그건 믿음이나 오용의 문제이고, 재는 행위 자체는 중립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한 겹 더 들어간 것입니다. 주례사를 생각해 봅시다. "이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는 이미 있는 결혼을 묘사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이 결혼을 성립시킵니다. 언어철학자 J. L. 오스틴은 1955년 강연에서, 이렇게 사실을 적는 대신 발화 자체로 행위를 해내는 말을 가려내 수행적 발화(performative)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 발상이 경제로 건너온 것이 수행성(performativity)입니다. 형식화된 도구와 지표가 실무에 박혀 대상을 구성하는 현상이지요. 어떤 공식이 값을 매기고 위험을 덜어내는 도구로 시장에 박히면, 시장이 그 공식 쪽으로 끌려갑니다. 재귀성과 수행성은 남남이 아닙니다. 수행성이 더 넓은 범주이고, 재귀성은 그 안에 든 한 갈래입니다. 측정의 수행성을 실증한 대표 연구도 그 되먹임의 부품 하나로 자기실현적 예언을 꼽습니다.

회의적인 독자는 여기서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실현적 예언을 낯선 어휘로 갈아끼운 것 아닌가." 갈리는 지점은 하나입니다. 재귀성은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틀린 믿음이 스스로를 참으로 만드는 구조입니다. 수행성은 참여자가 무엇을 믿든, 심지어 그 믿음이 옳아도 작동합니다. 열쇠가 믿음이 아니라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자기실현적 예언의 계보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그 위에 장치라는 층을 한 겹 얹을 뿐입니다.

장치의 상류에 남는 믿음 ·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장치를 세계에 박아 넣기로 한 설계자의 결정으로 상류로 올라갔을 뿐이고, 이 글의 마지막 물음이 바로 그 상류를 향한다.

이 구분은 실전에서 갈립니다. 삼성 실적 발표일의 코스피 폭락은 미래 서사가 딱딱한 지표를 앞질러 증폭된 재귀성이었습니다(메모리 사이클 글에서 다뤘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 재귀성을 품는 더 큰 패턴입니다. 지표가 아예 인프라로 굳어 세계를 제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국면이지요. 뒤에서 볼 블랙-숄즈 모형이 그런 경우입니다. 트레이더들이 그 공식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무 도구로 삼았기 때문에 시장이 그 모양으로 끌려갔습니다.

없던 대상을 세우다 — 지수가 '시장'을 발명한 날

수행성의 원형은 우리가 매일 듣는 숫자, 주가지수에 있습니다.

1884년 7월 3일, 찰스 다우는 자기가 내던 금융 회보에 종목 11개의 종가를 평균 낸 값 하나를 처음 실었습니다. 69.93이라는 숫자였습니다. 12년 뒤에는 산업주 12개로 새로 만든 다우존스 산업평균이 40.94에서 출발했습니다. 무심한 산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우가 '평균 내기'라는 선택을 하기 전까지 '시장'이라는 단일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흩어진 개별 종목들의 잡다한 더미가 있었을 뿐입니다. 평균이라는 지표가 그 더미를 온도와 수위가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 세웠습니다. "오늘 시장이 올랐다"는 문장은 다우의 산수 이후에야 성립합니다.

여기서 곧장 반론이 나옵니다. "지수는 시장을 반영할 뿐 만들지 않는다. 다우는 시장이 한 일을 받아 적었고, 인덱스펀드는 액티브 투자자들이 이미 매긴 가격을 따라갈 뿐이다. 가격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지표는 그저 온도계다." 기원과 한계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엔진은 되먹임에 있습니다.

지표가 인프라가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2020년 11월 테슬라의 S&P 500 편입이 발표되자, 주가는 기대를 미리 반영해 시간외에서 13% 넘게 뛰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재귀성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한 돈이 먼저 사들인 것이니까요.

지수라는 장치가 힘을 쓴 것은 그다음입니다. 12월 21일 실제 편입일에,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인덱스펀드들이 테슬라를 기계적으로 사야 했습니다. 그 강제 매수 규모는 추정 800억~1000억 달러대였습니다. 편입 무렵 지수에 반영된 테슬라 시가총액이 4000억 달러대로 추산됐으니, 그 5분의 1 안팎이(추정치에 따라 6분의 1에서 4분의 1까지 갈립니다) '지수에 들어간다'는 이유 하나로 움직인 셈입니다. 온도계가 온도조절기까지 떠맡은 것이지요. 이 얼굴 역시 다른 글에서 다뤘습니다(패시브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판단은 누가 떠안았나). 가격을 얼마나 밀었는지는 다투는 문제입니다. 다투지 않는 것은 그만한 돈이 기업의 무엇 때문도 아닌, 명단에 들었다는 이유로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반영뿐'이라는 말은, 지표에 무언가가 걸리는 순간 거짓이 됩니다.

엔진을 뜯다 — 네 부품과 하나의 급소

측정이 대상을 삼키는 과정은 네 부품이 맞물린 사슬입니다.

부품 1, 공약화(commensuration). 서로 다른 성질을 하나의 척도 위 크기로 바꿔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작은 인문대와 거대 연구중심대를 한 줄의 대학 순위에 세우는 일이 그렇습니다. 이 압축은 언제나 무언가를 버립니다. 한 숫자에 담기지 않고 남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부품 2, 걸린 것의 커플링. 그 숫자에 이해관계를 매다는 배선입니다. 걸리는 것이란 자본과 신용과 유통과 주목이지요. 계기판에 보너스를 거는 단계입니다.

부품 3, 반응성. 무언가 걸려 있다는 걸 아는 행위자는 감춰진 진짜 목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리지표에 최적화합니다. 진짜 목표는 대개 직접 볼 수 없고, 대리지표는 눈앞에 숫자로 떠 있기 때문입니다.

부품 4, 수행. 그렇게 대상이 지표 모양으로 변형됩니다. 지표는 세상을 적어 두는 일에서 세상을 짜는 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재는 순간, 대리지표는 애초 그것이 대리하던 실체와 어긋나 있습니다. 시험에 나올 것만 가르친 교실에서 점수는 올랐는데 학력은 그만큼 오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 어긋남이 굿하트의 법칙입니다.

측정 엔진이 도는 순서 — 네 부품과 되먹임
측정 엔진이 도는 순서 — 네 부품과 되먹임감춰진 목표(직접 볼 수 없는 것)공약화(여러 성질을 한 숫자로)결과 커플링(돈·신용·주목이 그 숫자에 걸림)반응성(목표 대신 숫자에 맞춰 행동)수행(대상이 숫자 모양으로 바뀜)굿하트 붕괴(숫자와 목표가 어긋남)어긋나도 루프는돈다
본문이 세운 사슬의 압축 — 넷이 다 있어야 엔진이 돌고 하나라도 빠지면 카메라다. 화살표는 순서와 의존이지 크기가 아니다.

"측정이 목표가 되면 그 측정은 좋은 측정이길 멈춘다." 널리 인용되는 그 문장은 굿하트가 쓴 것이 아닙니다. 같은 법칙을 교육 시험에서 따로 발견한 사람도 있습니다. 측정의 법칙조차 그 출처가 부정확하게 유통된다는 사실이, 이 글의 주제를 한 번 더 보여줍니다.

굿하트의 법칙 · 출처 고증 · 흔히 인용되는 "측정이 목표가 되면 그 측정은 좋은 측정이길 멈춘다"는 굿하트 본인이 아니라 인류학자 매릴린 스트래던(1997)이 정식화한 표현이다. 굿하트의 1975년 원문은 "관찰된 통계적 규칙성은 통제 목적의 압력이 가해지면 무너진다"였다. 사회학자 도널드 캠벨(1976)은 같은 법칙을 교육 시험에서 독립적으로 발견했다 — 어떤 사회 지표든 사회적 결정에 많이 쓰일수록 부패 압력을 받아, 감시하려던 과정 자체를 왜곡한다는 것.

네 부품을 끝까지 도는 사례는 로스쿨 순위입니다. 1987년 시작된 이 순위는 평판 40%, 선발성 25%, 취업 20%, 교수 자원 15%로, 서로 다른 성질의 학교들을 한 줄에 세웠습니다. 부품 1입니다.

그 줄에 학교의 명운이 걸렸습니다. 부품 2입니다. 그러자 학장들이 학교를 배점에 맞춰 개조했습니다. 자원의 배분이 달라지고 업무의 정의가 바뀌었습니다. 부품 3입니다.

어긋남은 그 뒤에 옵니다. 한 학장은 시험 점수 압박 때문에 문턱을 낮추는 사명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학교가 점수 쪽으로 기울었고, 그 순위가 재려던 '좋은 학교'의 한 부분은 오히려 깎였습니다. 부품 4입니다. 게다가 순위는 스스로를 참으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두 엘리트 스쿨에 동시에 붙은 지원자의 80~90%가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차이를 보고 앞선 쪽을 골랐습니다.

블랙-숄즈 모형은 이 사슬에서 부품 1과 4만 떼어 보여줍니다. 옵션은 어떤 주식을 미리 정한 값에 사고팔 권리입니다. 그 권리에 얼마를 매겨야 하는지는 오래 정해진 답이 없었는데, 1973년에 나온 이 공식이 그 값을 하나의 숫자로 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시장가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트레이더들이 이 모형으로 값을 매기고 위험을 덜어내기 시작하자, 실제 가격이 모형 쪽으로 수렴해 갔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7년 직전까지 공식과 시장가의 거리는 계속 좁아졌고, 한 경제학자는 "옵션가격이론은 경제학 전체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론"이라고까지 평했습니다.

빠진 것은 가운데입니다. 트레이더들은 모형을 속인 것이 아니라 썼습니다. 자기 점수를 읽고 그 점수를 높이려 움직이는 부품 3이 여기엔 없습니다. 그래서 블랙-숄즈는 엔진 전체의 시연이 아니라, 숫자가 대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 따로 떼어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엔진이 돌려면 네 부품이 다 있어야 하고, 각 부품은 조건 하나씩을 요구합니다. 압축할 수 있는 숫자(공약화), 매달 수 있는 걸린 것(커플링), 자기 점수를 읽는 행위자(반응성), 변형될 수 있는 대상(수행). 하나만 빠져도 엔진은 카메라로 주저앉습니다.

그런데 넷 중 하나가 유독 자주 열려 있습니다. 대상의 성질은 대개 바꿀 수 없습니다. 숫자를 아예 안 만들 수도 없습니다. 반면 그 숫자에 무엇을 매다는지는 재는 쪽이 고를 수 있습니다. 계기판에서 보너스만 떼어내면 눈금은 그저 눈금으로 돌아갑니다. 부품 2, 걸린 것의 커플링이 이 엔진의 급소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품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자주 열려 있는 부품이라서. 점수를 대상에게 아예 안 보여주는 것도 같은 급소를 건드리는 일입니다. 다만 그 방법 역시 재는 쪽만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건 그냥 나쁜 지표 문제 아니냐, 더 잘 설계하거나 여러 지표를 묶으면 되지"라는 반론은 급소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어긋남은 특정 지표의 설계 결함이 아니라 압력받는 모든 대리지표의 구조적 성질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표는 풍부한 실체를 한 숫자로 압축한 대리물이고, 공약화는 늘 무언가를 버립니다. 무언가 걸리면 최적화는 '지표가 재는 것'과 '지표가 빠뜨린 것'의 틈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지표를 여러 개 묶으면 점수 따먹기가 그 묶음의 이음새로 옮겨갈 뿐입니다.

느리게 무너지는 지표는 물론 있습니다. 진짜 목표와 대리지표가 거의 같거나, 걸린 것이 작거나, 속이는 비용이 비싼 경우입니다. 그러나 느린 붕괴가 중립은 아닙니다. 이 주장이 틀렸음을 보이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큰 것이 걸린 채 오래 쓰인 사회 지표를 하나 대면 됩니다. 그 지표가 재려던 것과, 지표를 쓸모없게 만들 만큼은 어긋나지 않았다면, 이 주장은 무너집니다.

카메라와 엔진을 가르는 것도 '중립적 도구냐 악용이냐'가 아닙니다. '대상이 자기 측정을 읽고 무언가가 걸린 전략적 행위자냐'입니다. 별과 온도는 자기 온도계를 읽지 않으니 영원히 카메라 앞에 얌전히 있습니다. 굿하트의 법칙과 앞서 본 그 교육판 법칙이 하필 일반적인 측정이 아니라 '사회적 의사결정에 쓰이는 사회 지표'에 관한 법칙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재는 대상이 사람과 기관인 순간, 중립은 악용을 막아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조건이 됩니다.

반대 방향의 반론도 하나 남아 있습니다. "'엔진'은 무생물 도구에 행위자성을 몰래 끼워넣은 과장 아닌가. 숫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배선한 건 사람이고, 숫자는 전달 매체일 뿐이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글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숫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에 무엇을 매달지 고른 쪽이 원합니다. '엔진'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숫자의 의지가 아니라 그 배선이고, 배선은 대개 배선한 사람의 이름이 지워진 채 작동합니다. 이 글의 마지막 물음이 향하는 것이 그 지워진 이름입니다.

지금까지는 사슬 자체를 봤습니다. 이제 그 사슬이 도는 세 무대를 봅니다. 같은 엔진이지만 무대마다 다른 부품이 크게 보입니다.

개인 — 공식도 아닌 규칙에 맞추는 사람들

지갑 속 숫자부터 봅시다. 미국의 개인 신용점수 FICO는 1989년에 상용화됐습니다. 원래 목표는 '이 사람이 돈을 갚을까'라는, 직접 볼 수 없는 성향입니다. 점수는 그 대리지표입니다. 대출 승인과 금리가 이 숫자에 걸리자, 사람들은 상환 능력이 아니라 점수를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성은 여기서 한 겹 더 엇나갑니다. FICO 점수는 상환 이력과 부채 규모와 신용 기간 등을 합친 복합 모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붙드는 규칙은 대개 '신용카드 이용률 30% 이하' 하나입니다.

이 규칙은 FICO의 공식 기준이 아닙니다. 회사는 30%를 넘으면 점수가 떨어진다는 통념을 데이터가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자체 권고는 10% 아래이고, 상위 점수대의 평균 이용률은 7% 수준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몇 사람이 이 규칙에 맞춰 사는지는 회사도 우리도 세지 못합니다. 다만 회사가 굳이 공개적으로 부인해야 했다는 사실이, 그 통념이 어디까지 퍼졌는지를 말해 줍니다. 대리지표에 한 번, 그 대리지표에 관한 잘못된 통념에 또 한 번, 이중으로 격리된 지점에서 최적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예 안 쓰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이용률이 0%가 되면 갚아 나가는 활성 이력이 없어 판단할 데이터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점수를 위해 일부러 소액을 긁는 행동이 여기서 나옵니다. 개인의 반응성은 이렇게 신용복구라는 하나의 산업으로 제도화됩니다.

중국의 즈마신용은 숫자에 매다는 목록을 훨씬 길게 늘였습니다. 2015년 알리바바 계열이 내놓은 이 점수는 개인을 350점에서 950점 사이에 세우고 600점부터 특전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점수를 대출은 물론 데이팅 앱 매칭 노출, 여행 시 보증금 면제 같은 실생활의 혜택에 결부시켰습니다. 중국 정부의 사회신용시스템과는 별개인 민간 프로그램입니다. 숫자에 걸린 것이 넓어질수록, 사람들은 자기 삶을 점수가 좋아하는 모양으로 다시 짭니다. 계기판을 보고 운전하는 사람이 한 나라 규모로 복제된 셈입니다.

개인은 숫자에 맞춰 자기를 바꿉니다. 한 층 위로 올라가면, 바꿔야 할 대상 자체가 아직 굳지 않은 지점이 나옵니다.

기업 — 대리지표가 발견이 아니라 구성에 가까울 때

MIT의 한 연구팀은 주요 평가기관 6곳의 ESG 등급이 서로 얼마나 일치하는지 쟀습니다. 재는 값은 상관계수입니다. 두 평가가 같은 순서로 줄을 세우는 정도를 보는 값이고, 1이면 완전히 같은 줄, 0이면 아무 관계 없음이지요. 결과는 평균 0.54, 범위 0.38~0.71이었습니다. 같은 기업을 두고 평가사끼리 절반쯤만 같은 줄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ESG 등급 발산 연구 · MIT의 플로리안 버그·율리안 쾰벨·로베르토 리고본, "Aggregate Confusion: The Divergence of ESG Ratings"(2022). 상세 서지는 하단 출처.

대조군이 있습니다. 같은 기업을 두고 매기는 신용등급은 평가사 간 상관이 0.92 수준입니다. 이 대조를 그대로 쓰려면 대가를 먼저 치러야 합니다. 신용등급은 AAA부터 D까지 공통 사다리를 쓰고 ESG 평가사는 저마다 제 눈금을 만드니, 같은 자를 쓰는 쪽 답이 더 붙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용평가사는 등록과 감독을 받아 방법론이 서로 닮도록 밀리지만, ESG에는 그런 압력이 아직 약합니다.

더 불편한 반론도 있습니다. 발행자가 등급 모형에 맞춰 상품을 설계하고, 평가사들이 나란히 최고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이 다 같이 빗나간 일이 있었지요. 평가자 사이의 일치는 진리와의 일치가 아닙니다. 그래서 0.92가 받쳐 주는 것은 '신용은 참이고 ESG는 거짓'이 아닙니다. 두 대상 사이에 차이가 하나 있다는 것뿐입니다. 부도는 늦더라도 결국 도착하는 채점자입니다. 늦게 온다는 것이 방금 본 대가이지요. 지속가능성에는 그런 채점자가 아예 없습니다.

회의적인 독자는 여기서도 반박합니다. "그냥 평가사마다 방법이 달라서 생기는 측정 오차 아니냐." 원 연구는 실제로 발산을 분해했습니다. 56%가 측정(같은 항목을 다른 데이터로 재서 생긴 차이), 38%가 범위(무엇을 넣고 뺄지), 6%가 가중치(무엇에 더 무게를 둘지)였습니다.

가중치부터 봅시다. 규범의 불합의를 가장 직접 재는 성분이 가중치인데, 그 몫이 6%에 그칩니다. 평가사들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서는 오히려 거의 갈리지 않습니다. 지속가능성이 가치관 싸움이라 발산한다는 설명에는 불리한 숫자입니다.

그런데도 범위가 38%로 갈립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 애초에 무엇을 지속가능성 안에 넣을지에서는 갈린다는 뜻입니다. 그 38%는 정밀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목록에 무엇을 올릴지의 문제입니다. 평가사마다 상대하는 고객이 다르다는 설명도 붙습니다. 재무 위험을 재려는 곳과 사회적 영향을 재려는 곳은 목록이 같을 수 없지요. 그렇다 해도 그 목록을 고른 것은 평가사입니다.

고객이 갈린다는 설명은 왜 목록이 서로 다른지는 말해도, 왜 그 서로 다른 목록이 '지속가능성'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팔리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분해가 가능했다는 사실 · 분해가 가능했다는 것은 연구팀이 여섯 평가사의 항목을 하나의 공통 체계로 먼저 옮겨 놓았다는 뜻이다. 공통 서술은 만들 수 있었고, 그런데도 그 안에 무엇을 넣을지는 평가사의 선택으로 남았다.

ESG 발산은 지속가능성이 세상에 없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진짜 목표가 부분적으로 실재하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 구성되는, 그 중간 어디쯤입니다. 다만 그 구성의 몫이 생각보다 큽니다.

여기서 계약이론(일을 시키는 쪽이 시킴받는 쪽에게 어떻게 보상을 걸지 다루는 분야)이 이미 답을 갖고 있다는 반론이 나옵니다. "이건 멀티태스크 대리인 문제의 재명명 아니냐. 측정 가능한 차원에 보상을 몰아주면 노력이 측정 안 되는 차원에서 왜곡된다는 것, 계약이론이 이미 증명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앞서 본 로스쿨이 그 이론이 예측하는 왜곡 그대로이니, 이 글이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다고 말하면 과장입니다. 달라지는 것은 적용 지점입니다. 계약이론은 일을 맡긴 쪽(주인)의 목적을 밖에서 주어진 것으로 놓고 시작합니다. 우리가 보려는 것은 그 앞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서 왔는가. 앞서 본 대로 지속가능성을 조립하는 손은 평가사입니다.

그래서 남는 물음이 달라집니다. 목적의 일부가 측정과 함께 굳는다면, 물음은 "이 지표가 참된 목표를 얼마나 왜곡하는가"에서 "누가 그 목적을 어떻게 골랐는가"로 옮겨갑니다. 새로운 것은 물음이 아니라 그 물음이 걸리는 지점입니다. 계약이 아니라 그 계약이 향하는 목적. 계약이론은 지표가 목적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묻고, 우리는 그 목적의 범위를 누가 정했는지를 묻습니다. 로스쿨처럼 사슬이 끝까지 도는 사례는 계약이론이 이미 아는 사례입니다. 목적이 어디서 왔는지는 ESG처럼 사슬이 다 돌기 전인 지점에서야 드러납니다.

등급을 좇아 공시를 체크박스에 맞추는 그린워싱도 물론 벌어집니다. 대상이 지표 모양으로 변형되는 일이지요. 다만 그것은 앞 무대에서 본 점수 관리와 같은 부품입니다. 이 무대가 유독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 앞 단계, 잴 대상 자체가 아직 굳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업 무대에서는 잴 대상이 흔들렸습니다. 한 층 더 올라가면 흔들리는 것이 대상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문화 — 모양을 고르는 쪽

그 기준을 쥔 쪽이 눈금을 갈아끼우는 무대가 세 번째입니다. 독자가 매일 그 안에서 사는 곳, 조회수와 추천.

2012년, 유튜브는 추천과 검색 알고리즘의 핵심 신호를 '조회수'에서 '시청 시간'으로 옮겼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신호 가운데 무게중심을 하나 바꾼 기술적 조정입니다. 그러나 창작자들이 새 신호에 맞춰 영상을 다시 짜면서, '좋은 콘텐츠'의 기준이 그 전과 후로 갈렸습니다.

앞의 사례들과 결이 다른 부품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앞에서는 대상, 곧 개인과 기업이 지표에 맞춰 변형됐습니다. 여기서는 재는 쪽이 어떤 모양을 원하는지에 따라 지표의 무게중심 자체를 옮깁니다.

조회수를 볼 것이냐 시청 시간을 볼 것이냐는 세계에 이미 있던 사실이 아닙니다. 플랫폼이 고른 선택이고, 그 선택이 사람들이 만들고 보는 것의 모양을 좌우합니다. 우리가 이미 다룬 추천의 위임(무엇을 원할지, 나는 누구에게 넘겼나)과 짧은 호흡의 외주화(어젯밤 그 한 시간은 누가 골랐나)는, 이 각도에서 보면 '누가 모양을 고르는가'의 문제입니다. 모양은 주어진 게 아니라 골라지고, 그 선택권은 재는 쪽에 있습니다.

엔진이 완전히 돌지 않는 곳

엔진은 실재하지만 부분적입니다. 완전히 돈다고 못 박으면 과장이 됩니다.

첫째, 엔진은 자신이 근거로 삼은 진리를 스스로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1980년대에 쓰이던 기법이 하나 있습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팔아 손실을 막도록 짠 포트폴리오 보험입니다. 블랙-숄즈 계열의 계산에 기댄 이 기법이 1987년 폭락을 오히려 키웠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도구를 쓰는 일이 되레 그 도구의 묘사에서 대상을 멀어지게 하는 것, 매켄지는 이것을 역수행성이라 불렀습니다. 동시에 "증명할 수도, 아무 역할도 없었다고 결정적으로 보일 수도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 폭락 뒤 옵션 시장에는 이전에 없던 변동성 스큐가 나타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미리 정해 둔 매매 가격, 곧 행사가가 어디냐에 따라 시장이 매기는 변동성이 굴곡을 이루는 현상입니다. 변동성은 값이 얼마나 출렁일 것으로 시장이 보는지입니다. 블랙-숄즈는 그 선이 평평하리라 예측했지만 굴곡은 남았고, 모형의 예측은 더는 맞지 않게 됐습니다. 시장을 제 모양으로 끌고 가던 엔진이, 바로 그 작동으로 자기 설명을 무너뜨린 셈입니다.

둘째, 물리적 실체는 저항합니다. 서사가 아무리 세도, 이미 팔려 나간 반도체 재고가 이야기로 되돌아오지는 않습니다(메모리 사이클 글). 대상이 사람이나 기관이 아니라 물질일수록, 그리고 대상이 자기 측정을 읽지 못할수록, 사슬은 끝까지 닫히지 못합니다.

셋째, 커플링을 끊는다고 엔진이 곧장 카메라로 되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변형이 오래되어 규범이나 정체성으로 굳으면, 걸린 것을 떼어낸 뒤에도 그 모양은 한동안 남습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에 익숙해진 교실이 시험이 사라진 뒤에도 그 습관을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급소는 지렛대이되 즉효약은 아닙니다.

이 세 가지는 엔진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부품이 하나씩 빠지거나 굳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엔진이 언제나 끝까지 돈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걸린 숫자 앞에서 중립이 기본값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모양으로 만들고 있으며, 누가 골랐는가

무언가 걸린 숫자를, 자기 점수를 읽고 반응할 수 있는 대상에게 들이대는 순간, 그 숫자는 세상을 반영하기를 멈추고 만들기 시작합니다. 굿하트의 법칙은 이 엔진과 별개의 병이 아니라, 엔진이 다 돌고 난 뒤 나오는 출력, 곧 붕괴 국면입니다.

무대재는 대상대리 숫자무엇이 걸렸나이 무대가 크게 보여주는 것
개인돈을 갚을 성향신용점수대출 승인과 금리 · 즈마신용에서는 보증금 면제와 데이팅 앱 노출까지반응성이 하나의 산업이 된다
기업지속가능성ESG 등급(평가사 6곳)등급에 맞춘 공시와 평판대리 숫자가 대상을 각자 다르게 조립한다
문화콘텐츠의 좋음조회수 → 시청 시간추천·검색 노출, 곧 유통재는 쪽이 숫자를 갈아끼운다
표 출처 · 개인 = FICO 자사 자료와 즈마신용 출시 발표 · 기업 = MIT 연구팀의 ESG 등급 발산 연구 · 문화 = 유튜브 공식 블로그. 상세 서지는 하단 출처.

세 무대 어디서도 급소를 쥔 손은 재이는 쪽에 있지 않습니다. 개인은 점수에 맞춰 살 뿐, 무엇에 점수를 매달지는 점수를 만들고 쓰는 쪽이 정합니다. 기업은 그나마 절반쯤 쥡니다 — 등급에 맞춰 공시하며 협상하지만, 목록에 무엇을 올릴지는 평가사가 정하지요. 창작자는 아무것도 쥐지 못합니다. 무엇을 셀지부터 플랫폼이 고르니까요.

엔진이 다 돌고 나오는 이 붕괴는 더 좋은 지표로는 못 고칩니다. 어긋남은 나쁜 지표의 버그가 아니라 압력받는 대리지표의 구조적 성질이기 때문입니다. 손댈 수 있는 것은 지표의 정교함이 아니라 급소입니다. 걸린 것을 숫자에서 끊거나, 측정을 대상에게서 감추거나.

시험은 두 문항이면 됩니다. 이 숫자를 채점해 줄 실제 사건이 있는가, 그리고 그 채점자는 얼마나 늦게 오는가. 채점자가 없으면 그 숫자는 발견보다 구성 쪽에 가깝습니다. 있어도 부도처럼 한참 뒤에 온다면, 엔진은 그 지연만큼 자유 시간을 얻습니다. 채점자가 있어도 그 채점표를 누가 짰는지는 이 시험이 답하지 않습니다.

이 배선을 알고 나면, 점수에 맞춰 사는 일을 개인의 요령이나 허영으로 부르는 진단은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 배선을 읽은 사람이 배선대로 움직인 것뿐입니다.

그러니 지표를 마주할 때 던져야 할 물음이 바뀝니다. 첫 물음은 "이 숫자가 정확한가"가 아닙니다. 정확도를 아무리 높여도 엔진은 계속 돕니다. 진짜 물음은 이것입니다. "이 숫자가 세상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 모양을 누가 골랐는가." 유튜브가 조회수 대신 시청 시간을 고른 그 결정, ESG 평가사가 저마다 다르게 조립한 지속가능성의 기준, 지수위원회가 무엇을 시장에 넣고 뺄지 정하는 그 규칙. '숫자가 객관적으로 정했다'는 중립성의 주장은, 정작 그 모양을 고른 쪽을 시야에서 지웁니다.

측정은 세상을 촬영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밀어 바꿉니다. 그러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계기판 눈금의 정확도가 아니라, 그 엔진이 어느 쪽으로 돌도록 누가 설계해 두었는가입니다.

유의잔존 MAJOR 5(전부 '덜 논증됨'·본문이 미완을 스스로 노출 → 비차단) = ESG 범위 38% 경쟁가설 판별 부족 · 급소 정의가 착지에서 확장 · 완주사례↔신기여사례 상보 분포 · 축1 통념 스틸맨 부분 · 독자 자리 회수 부분. ★EN판 미동기 — 라이브 published/blog.en.md가 이번에 폐기한 44% 합산 라벨·'정도의 차이' 자기항복을 유지(사용자 결정 사항).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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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myFICO(Fair Isaac), "History of the FICO Score" · "What Should My Credit Utilization Ratio Be?" — https://www.myfico.com/credit-education/blog/credit-utilization-be
  13. Ant Financial, 즈마신용(Zhima/Sesame Credit) 출시 발표 (2015-01-28)
  14. YouTube Official Blog, "YouTube analytics now includes time watched"(2012) — https://blog.youtube/news-and-events/youtube-analytics-now-includes-time_11
이 글은 AI와 함께 다차원으로 분석, 검증하고 집필자가 검수했습니다.